조선일보’남 돕고 돈도 버는’ 혁신 기업들의 아이디어 올림픽
지난달 23일 미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대 인근 존 브라워 센터. 원형극장 형태의 대회의장에 불이 꺼지자 객석을 메운 250여명의 청중이 숨을 죽였다. 정면 스크린에서 아프리카 빈국 부르키나파소의 앙상한 어린이 영상이 떠올랐다. 뼈만 남은 아이들은 염소 젖 같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15센트(약 167원)로 고(高)영양식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무대 앞에 선 라에티샤 라지넬이 호소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는 프랑스 렝스 경영대생이자 착한기업(소셜벤처)인 ‘비타누트릴(Vitanutril)’ 의 CEO(최고경영자)였다.
라지넬은 “부르키나파소 해안에 자생하는 해조류인 스피룰리나는 단백질·미네랄·비타민이 풍부해 맛만 개선하면 최고의 음식이 될 수 있다”며 “이미 (프랑스 식품회사인) 다농의 연구개발팀에 의뢰해 영양분석을 마쳤다”고 말했다.
5분간의 발표가 끝나자 객석에서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불이 켜지고 객석 맨 앞줄에 앉은 심사위원들이 질문을 시작하면서 열기는 가라앉았다.
“비타누트릴을 먹으면 설사와 말라리아를 줄인다고 했는데 의학적 증거가 있나?” “2013년까지 25만명의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근거를 모르겠다”….
3명의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며 던지는 송곳 같은 질문에 라지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라지넬은 땀을 흘려가며 다농사(社) 연구개발팀의 분석 결과와 부르키나파소 국민들의 1인당 소득, 판매망 확보 계획 등을 설명해야 했다.
◆세계 일류 경영대 500여곳 참여
4월 22~23일 버클리에서 열린 세계소셜벤처대회(GSVC)는 단순히 사회적 기부나 봉사활동을 겨루는 장이 아니다. 심사위원들은 숭고한 목적이나 사회적인 파급 효과보다 대회에 참가한 착한기업이 과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미 UC버클리대 경영대가 주최한 GSVC는 세계 일류 경영대생과 전통적 개념의 사회운동가들이 한 팀을 이룬 착한기업들이 참가, 자신들의 비즈니스모델이 사회적 목적에 기여하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사업계획을 제출해 검증을 받는 경연대회다.
1999년 창설된 후 12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에서 500여개 팀이 참여, 엄격한 지역예선을 거친 11개 팀이 최종 결선에 진출했고, 5개 팀은 별도의 ‘사회적 영향 평가’부문에 경쟁했다. 한국도 서울대·연세대 등의 경영학과 학생들이 국내 예선을 거쳐 인도에서 열린 지역 예선에 참가했지만 최종 결선엔 한 팀도 진출하지 못했다.
참가자들 면면은 화려했다. 하버드대, 버클리대, MIT, 스탠퍼드, 런던비즈니스스쿨, 베이징대 등 일류 경영대 학생들이 망라돼 있었다. 대회 1등 상금은 2만5000달러(약 2800만원)로,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권위 있는 착한기업 경연대회란 점 때문에 참여 열기는 매년 높아지고 있다.
◆”돈도 벌고 남도 돕는 사업 하겠다”
참가자들은 모두가 일류 경영대생으로 졸업 후 영리기업이나 월가에 진출해 고액연봉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겐 ‘돈도 벌고 남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한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참가팀들이 들고 나온 기술은 일반시장에서도 통할만 한 혁신적인 것들이었다. 씨크리트(C-Crete) 테크놀로지가 대표적이었다. 씨크리트는 기존 시멘트 제조공정에 독자 개발한 촉매를 넣어 시멘트의 강도는 기존보다 2배로 높이고 제조원가는 20% 절감하면서 동시에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절반으로 줄이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다. 씨크리트의 CEO와 CFO는 모두 MIT 경영대생들이고, 기술개발은 MIT 화학과 교수 등이 맡고 있었다.
씨크리트의 CFO 나타넬 바루키안(MIT 경영대 졸업반)은 “우리가 가진 기술이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아도 벤처펀드나 시멘트 업계로부터 투자를 끌어내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며 “GSVC 출전은 사업성을 따지기보다는 우리의 독창적 기술로 어떻게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검증받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값싼 첨단 의족’ 아이템이 1등
이번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리모션 디자인스(Re:motion Designs)역시독창적인 기술을 사회적 목적과 결합한 회사였다. 스탠퍼드대 학생들이 만든 이 회사는 제조원가 20달러(2만2000원)짜리 첨단 의족(義足)을 개발도상국의 장애인 2000만명에게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겠다는 사업계획으로 1등에 선발됐다.
이 회사의 제품은 폴리머 재질로 만든 의족을 여러 개의 구동축으로 연결, 하지가 잘린 장애인들이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게 만든 제품이다. 이미 이 제품은 인도에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제품 성능시험이 진행되고 있고, 작년에 타임·CNN·비즈니스위크 등에 혁신적인 제품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착한기업의 사회적 가치뿐 아니라 수익 모델을 철저하게 따진다는 점은 대회 심사위원이나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 구성에서도 잘 드러났다. 리셉션장에서 만난 캘리포니아주 최대 로펌 ‘모리슨 포리스터’사의 나오미 오간 변호사는 “1주일에 1~2일씩 회사의 양해를 얻어 착한기업의 창업과 자금조달을 돕는 프로보노(pro bono·전문가 집단의 무료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오간은 “더 중요한 건 우리가 발굴해서 지원하는 소셜벤처 10곳 중 2~3곳은 나중에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둬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는 고객이 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버클리(미 캘리포니아)=최현묵 기자 sea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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